10기에 지원하려다 보니 '삶의 지도'를 제출하라는 항목이 있더라고요. 평소에도 지인들로부터 "어떤 인생을 살아오셨나요?"라는 질문을 자주 받아왔는데, 이번 기회에 저도 한 번 정리해볼 겸 작성을 해봅니다.
이 길이 내 길인가?
어릴 때는 사학자가 되고 싶어 사학과 진학을 준비했지만, 성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어요. 한국사 자격증 시험에서도 계속 떨어지면서, 이 길이 정말 내 길인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죠.
그때 받은 스트레스를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자기계발서를 읽고, 관련 강연도 찾아 들었어요. 또한, 스트레스의 원인을 정리하고 싶어서 연습장에 글을 많이 썼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글들을 간직했더라면 좋았을 텐데, 당시 스트레스가 너무 커서 모두 찢어버렸답니다.
왜 그런 결론을 내렸는지 모르겠지만, 결국 학교 공부보다는 사회에 나가 돈을 버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자퇴를 고민하게 되었고, 부모님과 진지하게 상의했던 기억이 나요.
부모님께서는 자퇴를 만류하셨고, 긴 대화 끝에 합의점을 찾았어요. 그 결과, 디자인을 전공하기로 결정하고 열심히 실기 준비를 했죠. 사실 저도 디자인을 선택한 이유는 매우 현실적이었어요. 최소한 먹고 살 수는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죠.
그렇게 새로운 꿈을 품고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습니다. 비록 처음 계획과는 달랐지만, 이 결정이 제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어요.
너 디자인 못하는데 왜 하니?
우여곡절 끝에 디자인학과에 입학했지만, 처음부터 순탄하진 않았어요. 한 교수님께서 "너 디자인 못하는데 왜 하니?"라고 말씀하셨거든요.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어 더 열심히 노력하게 되었어요.
다행히 제 잠재력을 알아봐 주시고 실력을 키워주시려는 교수님도 계셨습니다. '할 수 있다'는 의지로 꾸준히 노력한 덕에 조금씩 성장해 나갔어요.
대학교 마지막 학년 때, 타이포그래피를 제대로 배우고 싶은 열망이 생겨 페이스북에서 디자인 관련 모임을 찾아봤어요. 마침내 타이포그래피 모임을 발견해 가입하게 되었죠. 학교가 경기도 이천에 있어서 왕복 3시간이 걸렸지만, 열정 하나로 꾸준히 참석했습니다.
타이포그래피에 깊이 빠져들어 폰트 만드는 수업도 듣고, 폰트 종류를 외울 정도로 열심히 공부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디자인 실력은 여전히 부족하다고 느꼈지만, "왜 하니?"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저를 성장하게 해준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나는 뭘하고 싶은걸까?
디자인 분야는 정말 다양하다 보니, 제가 정확히 어떤 길을 가고 싶은지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다양한 경험을 쌓기 위해 여러 모임에 참석하기 시작했어요. 웹디자인부터 개발자 모임까지 폭넓게 참여했죠.
처음에는 개발자들의 대화를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점차 새로운 개념들을 접하게 되었어요. 특히 UX(사용자 경험)라는 개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학교에서도 UX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는데, 실제 현장에서 이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는 걸 알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어요. 덕분에 학교에서 배우는 이론과 실무 현장의 연결고리를 발견할 수 있었고, 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어요.
그러던 중, 세계적인 출판계의 거장인 게르하르트 슈타이틀의 전시를 보게 되었어요. 그 경험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고, 인쇄 분야에 사용자 경험을 접목해보고 싶다는 새로운 꿈이 생겼어요. 부푼 마음을 안고, 저는 편집 디자이너의 길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습니다.
종이에서 디지털로 넘어가는 시대
회사를 4년 정도 다니다 보니 점차 클라이언트들이 디지털을 선호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이전에는 대면 상담이 주를 이뤘지만, 이제는 앱을 통해 쉽게 보험을 가입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죠. 보험 설계사분들도 무거운 서류 대신 가벼운 태블릿 하나만 있으면 설명이 가능해졌고, 효율성 면에서 큰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기술 발전 그 이상으로, 일하는 방식과 클라이언트의 기대치까지 바꿔 놓았어요.
웹과 관련된 디자인 작업이 점점 많아지면서, 종이와 인쇄물을 다루던 방식에서 디지털 화면으로 옮겨가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처음에는 새로운 기회를 맞이하는 듯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을까?'라는 고민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어요. 아무래도 빠르게 변해가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죠.
그러던 중 회사가 중요한 입찰에서 떨어지면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결국 자연스럽게 권고사직을 받게 되었고, 저 역시 미래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새로운 도전, 다른 걸 해볼까?
이때 한 달 내내 야근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던 시기였어요. 디자인은 잘 해내긴 했지만, 혼자서 독자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느끼면서 '나는 정말 디자인을 하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죠.
그런 고민 끝에 공인중개사 책도 사보고, 건축 공부를 하고 싶어서 소방 관련 자격증을 따고, 인테리어 기능사까지 공부했어요. 하지만 다시 생활비를 벌어야 하는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자, 디자인이 점점 하기 싫어졌습니다. '열심히 해도 잘 안되는 일을 굳이 계속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싫어하는 것도 해내는 것도 재능이야"라는 말을 떠올리며 다시 디자이너로 지원하고 일을 이어갔습니다.
그러나 이직한 회사에서도 상황은 비슷했어요. 인쇄에서 디지털로 빠르게 전환되는 시기였고, 웹 디자인 작업이 더 많아지는 세상이 되었죠. 또 한 번 입찰에서 떨어지면서 결국 권고사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2번의 권고사직을 받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인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전 회사의 대리님께서 퍼블리셔 과정을 듣는다고 하시면서, 웹으로 넘어가려면 코딩은 어느 정도 알아야 한다고 조언을 해주셨어요. 그 말을 듣고 나서 저도 웹 디자인과 개발의 필요성을 느끼고 코딩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할 건데, 왜 코딩이 재미있지?
퍼블리셔 과정을 들으면서 저는 자신 있게 "UX 디자이너가 될 거야!"라고 선언했어요. 그런데 의외로 제이쿼리로 홈페이지를 만드는 과정이 정말 재미있더라고요. 갑자기 마음이 혼란스러워져서, 주변의 관련 업계에 계신 분들께 상담을 받기 시작했어요. "저는 디자인을 하고 싶은데, 코딩을 하는 게 맞을까요?"라는 주제로요.
상담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너 디자인도 많이 해봤고, 실력도 있잖아. 안 맞으면 다시 디자인으로 돌아가면 되지!" 그 말을 듣고 마치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기분이 들었죠. 하지만 여전히 '내가 개발자까지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저를 지배하고 있었어요.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여러 모임을 다니면서, 개발자가 쉽지 않은 직업이라는 걸 알았고, 공부의 깊이도 다르다는 걸 느꼈거든요. 그래서 이걸 정말 시작하는 게 맞을까 고민이 되었던 거죠. 결국 저는 퍼블리셔로 진로를 바꾸기로 결정했습니다.
퍼블리셔말고 개발자 해보자
퍼블리셔를 준비하면서도 생활비를 벌어야 해서 디자인 아르바이트를 하러 다녔어요. 운이 좋게도 가고 싶던 회사에 면접 기회가 생겼고, 면접에서 "연차가 있는데 왜 아르바이트로 지원했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죠. 그래서 "퍼블리셔가 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로 지원했습니다"라고 솔직하게 말씀드렸어요.
그때 팀장님께서 저를 좋게 봐주셔서, 프론트엔드 개발자분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생겼습니다. 그분께서 "퍼블리셔는 앞으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어요. 자바스크립트와 리액트를 조금만 더 배우면 개발자로서 더 좋은 기회가 생길 거예요"라고 조언해주셨죠.
그 말을 듣고,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바로 국비 지원을 받아 리액트를 배울 수 있는 과정을 신청했어요. 그리고 곧바로 토이 프로젝트도 시작했습니다. 물론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되면 좋겠지만, 좋은 팀원을 만나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처음엔 소규모로 진행하다가, 이후에는 더 많은 인원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어요.
쉽지 않다. 취업
급하게 준비했던 것이 체한 걸까요? 약 1,000곳에 이력서를 넣었지만, 대부분 잘 되지 않았습니다. 되돌아보면, 무대뽀 정신으로 무작정 이곳저곳에 도전했던 게 아닌가 싶어요. '나한테 정말 목표라는 게 있긴 할까? 그냥 되는 대로 살면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최근에 결정하는 습관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나 자신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삶에서 회피하지 않고, 결정하고, 후회를 최소화하는 습관을 들였다면, '되는 대로 살자'는 식으로 굴러가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제는 피할 수 없으면, 차라리 마주치는 게 맞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다시 시작해본다.
4월의 마지막 면접을 보고 나서, 스스로를 객관적으로 돌아보며 '내가 뭐가 문제일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첫째, 많은 인원이 참여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 경험이 없다는 것.
둘째, 기본기가 부족하다는 점.
이런 고민 끝에 결국 국가 지원을 받는 KDT 과정을 신청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예상대로 흘러가진 않더라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이 친구들도 시간을 들여 여기에 참여하는데, 좋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세 번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정말 최선을 다했습니다.
기본기 공부는 충분히 하지 못했지만, 무엇보다도 팀원들과 협력해 하나의 제품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정말 즐거웠습니다.
앞으로의 길, 더 나은 도전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통해 많은 배움을 얻었고, 여러 번의 실패와 도전을 거치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그 모든 순간들이 저를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었어요. 특히, 함께 협력해서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를 깨달았고, 이를 통해 제 자신에게도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저는 더 이상 회피하지 않고,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적극적으로 마주하며, 제 길을 찾아 나가려 합니다. 지금까지의 배움과 경험을 발판으로 삼아, 앞으로도 계속해서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개발자가 되고 싶습니다.
결국, 도전과 실패 속에서 내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내는 과정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삶의 여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니까요. 이제는 그 여정을 자신 있게 걸어갈 준비가 되었습니다.